오늘의 만나

고린도후서 5:17

오윤길선교사 2025. 12. 30. 09:25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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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누구든지”라고 말합니다.

조건은 단 하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정체성이 새로워지고 관계가 새로워지고 삶의 방향이 새로워집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성격개선이나 습관 교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것은 과거의 죄, 실패, 두려움, 옛 습관에 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떨 때는 여전히 옛사람 같을 때가 있습니다.

낙심하고, 화를 내고, 비교하고, 죄에 흔들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다.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 이루고 있다.”

새 피조물의 삶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이 바뀐 삶입니다.

죄로 향하던 발걸음이 하나님께로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성공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뀌어 갑니다.

오늘 내가 붙잡아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첫째, 나는 내 과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정의된다.

둘째, 실수했을 때 “나는 여전히 새 피조물이다”라고 고백한다.

셋째, 오늘 하나님께 이렇게 묻기 “주님, 오늘 제 삶에서
새 피조물답게 살아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 용서해야 할 사람 한 명
- 내려놓아야 할 걱정 하나
- 순종해야 할 한 가지 작은 일
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죄, 실패에 붙잡히지 않고 새 피조물답게 살도록 성령님 인도해 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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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감이 교차합니다.

초등학생 때 처음 만나, 교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딸처럼 품고 아빠라고 부르게 하면 키우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 그와 함께 다른 교회로 가 버렸고, 그때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이 땅에서는 “아빠”라고 부르지 말고 “목사님”이라고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여전히 연락을 자주 해왔습니다.

그때 간 교회가 한국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교회라, 제가 더 관여하기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분야에는 건드리지 않는, 묵시적인 질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선교사님의 페이스북에서 그 아이의 약혼식에서 축복기도를 해 주는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쭈어 보니 “우리 교회 성도”라고 하셨습니다.

아, 남자 친구를 따라 교회를 옮겼구나 —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축하해 주었는데, 어제는 다른 제자 한 명과 함께 아내가 좋아한 과일을 기억했다가 봉지봉지 싸 들고 찾아왔습니다.

성탄절 행사때에는 출석하는 교회 행사로 바빠 우리 교회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2월 14일 결혼식에서 “축도”를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기쁘고 감사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가 지금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이 한국 선교사님이기에,
제가 나서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제 감정보다, 관계의 질서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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