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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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풍성했지만, 그만큼 분열도 깊었습니다.
바울은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사람의 논리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만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은 생각의 획일화가 아니라 중심의 일치입니다.
각자의 배경과 은사는 달라도,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할 때 공동체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분쟁은 대부분 ‘내가 옳다’는 주장에서 시작되지만, 연합은 ‘주님이 중심이시다’라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말이 아닌 주님의 이름으로, 주장보다 사랑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자가 저와 여러분이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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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교회에서 만난 자매!!
껌뽕브링이라는 오지마을에서
자기 집 처마를 예배처소로 내어준 한 가정을 만났습니다.
그 집의 딸이 셋인데, 위로 두 언니는 이미 집 앞에 사는 남자들과 결혼해 살고 있고
셋째는 아직 미혼이라고 했습니다.
몇 살이냐고 묻자, '열일곱'이라고 대답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시골에서는 할 게 없어요. 그냥 결혼해서 살아야죠.”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이 아이를 한국에 일하러 보내거나
한국 사람과 결혼시키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장난처럼 물었습니다.
“남편은 몇 살이면 좋겠어?”
아이의 대답은 '스무 살'이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스무 살이면 아직 학생이야.”
그리고 다 같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같은 나이, 같은 시간 속에서도
전혀 다른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꿈을 묻는 질문에 #직업이 아니라 #결혼을 말해야 하는 아이들, #희망을 말하기 전에
먼저 #생존을 말해야 하는 오지마을의 현실... ㅠㅠ
그래서 더 간절해집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이 “참아내는 삶”이 아니라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해주는 소식이 되기를....
희망 없이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반복이 아니라
복음이 이들의 삶을 바꾸는 진짜 희망이요, 구원이 되기를
마음 깊이 기도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