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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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자주 읽힙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염려하지 않고 있는가, 아니면 염려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인가?
오늘의 교회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교세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고, 영향력을 잃을까 염려하고,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날까 염려합니다.
문제는 그 염려가 기도보다 먼저 말이 되고, 간구보다 먼저 입장이 되며, 감사보다 먼저 불평이 되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들과 지도자들 안에서 이 염려는 종종 정치적 언어와 책임 전가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함께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보다, 서로를 향해 원인을 지적하고 누가 더 옳은지를 가려내는 데 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라는 명령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염려는
반드시 불평이 되고, 불평은 결국 서로를 향한 판단과 분열로 이어집니다.
오늘 교회의 분열은 신학의 문제이기 전에 기도를 잃어버린 염려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회개를 외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모든 일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두려움이 방향을 정하고 있는가?
현장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는
이 말씀이 다르게 들립니다.
자비량 사역을 위한 노동현장 속에서, 쉼이 필요한 사역자의 눈물 곁에서, 말없이 함께 기도하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염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염려는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그곳에서는
불평보다 기도가 앞서고,
입장보다 간구가 먼저이며,
성과보다 감사가 남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자라고 있는 자리 입니다.
기독교의 위기는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일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는 다시 선택해야 합니다.
염려를 확성기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염려를 제단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
더 많은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이 말씀은 위로가 아니라 지금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 지시 입니다.
후원자 여러분의 기도는 이 사역이 염려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다시 하나님께 아뢰는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가장 분명한 동역입니다.
함께 무릎 꿇어 주십시오.
그리고 교회가 다시 기도하는 공동체로 서도록 끝까지 동행해 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